교통사고 시신 유기범 타르 색소로 발견했다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 이야기

완전범죄는 가능한가.

타르 색소로 발견한 교통사고 시체 유기범

서울 근교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매년 겨울에 눈이 오면 이 마을 청년들은 무리를 지어 토끼 사냥을 다녔다. 그해에도 눈이 내리자 토끼 사냥을 나갔다. 그들은 토끼가 지나가는 길에 덫을 놓기 위해 여기저기 나뭇가지를 치고 있었다.

그때 골짜기에서 일하던 청년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눈에 덮여 있던 시체를 본 것이다. 소리나는 쪽으로 청년들이 모두 모였다. 그중 청년 한 명이 용기를 내어 시체 위의 눈을 털어냈다.

얼굴과 옷은 피투성이였다. 청년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와서 옷을 찾아보니 지갑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신분증뿐만 아니라 돈도 그대로 들어 있었다. 강도 사건은 아니었다.

시신은 H개발회사 경리계장이었던 W라는 사람으로 일주일 전 실종됐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아무도 실종된 이유를 짐작조차 못했다.

수사관들이 조사한 결과 그는 일주일 전쯤 고교 동창회에 갔다고 한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자주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을 만나 여러 차례 술자리를 옮기며 마신 것 같다. 통금이 가까워져 헤어졌지만 그 뒤로는 본 사람이 없었다.

혹시 통금 시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덧붙인다. 예전에 한국에는 야간 통행금지 제도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국경 부근이나 도성에 그런 제도가 있었다.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후 미군정에서 시작된 현대의 야간 통행 금지 제도는 1955년 한국 정부에 의한 법령이 공포되면서 정착되었다. 통금 시간은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였지만 그동안은 집 밖으로 나돌지 못했다. 그래서 매일 밤 11시경부터 귀가 전쟁이 시작됐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서너 배의 요금을 내고라도 택시를 잡으려 했고 택시는 손님을 한 번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죽음의 질주라고 부를 정도로 총알처럼 달려갔다(그래서 총알택시라고도 불렀다). 택시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여관 신세를 지거나 파출소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야간 통행 금지 제도는 1982년 1월 5일 새벽 4시를 기점으로 사라졌다.

어쨌든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면서 동네 공의에게 부탁해 부검을 했다. W의 시신은 손상이 많아졌지만 그 중에서도 치명상은 두개골 골절로 인한 경뇌막상 출혈로 밝혀졌다.

말하자면 W는 머리 부분에 작용한 외력에 의해 두개골 내에 출혈이 생겼고 그것이 뇌를 압박해 죽음에 이른 것이었다. 이외에도 갈비뼈 골절, 왼쪽 정강이뼈 골절 등이 있는 것으로 미뤄 W에는 사망 전 상당한 외력이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원인을 밝혀낸 뒤에는 사망한 장소가 어디인지 확인해야 한다. 발견된 장소인지 아니면 살해된 뒤 그곳으로 옮겨졌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경찰관들은 동네 청년들과 함께 현장의 눈을 쓸고 나서 조사를 시작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격투한 흔적이나 혈흔 같은 것을 찾아본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W가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이곳에 버려졌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사망 시각은 동창회가 있던 날 밤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에 그날 모인 동창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특히 그날 W처럼 수차례 술자리를 함께한 몇몇 친구들을 심문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의심스러운 사람이 없었고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그동안 어떤 흉기로 어떻게 살해됐는지를 조사했다. 부검을 한 공의는 거기까지는 모르겠다며 내게 찾아가 볼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수사관들은 부검을 전후해 찍은 W의 시신 사진을 들고 찾아왔다. 시체 해부 감정서와 사진을 검토했다.

시신 손상은 좌우로 편재돼 있을 뿐 중앙 부분에는 손상이 전혀 없었다. 두개골 골절도 오른쪽 머리에, 경뇌막상 출혈도 오른쪽이었고 갈비뼈 골절도 오른쪽이었다. 하지만 정강이뼈 골절은 왼쪽이었다.

왼쪽은 아래쪽에, 오른쪽은 위쪽에 외력이 주로 작용하여 왼쪽보다 오른쪽에 작용한 외력이 더 커 그것이 죽음의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손상 형태는 주로 자동차 사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을 자동차 사고로 보고 다시 분석해 봤다. 왼쪽 정강이뼈 골절은 자동차 범퍼와 충돌하면서 생긴 손상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 W의 몸은 전방으로 날아갔을 것이고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오른쪽 가슴과 머리 부분이 바닥에 부딪혀 골절과 출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W의 오른쪽 부분, 특히 손이나 얼굴 부분에서 바닥과 부딪히면서 합입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면이라면 모래나 흙, 작은 돌조각 같은 것일 테고 아스팔트라면 타르 색소가 함입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른쪽 신체 부위를 살펴보니 오른쪽 갑에 검은 타르 색소가 차분한 찰과상이 있었다.

W는 자동차 사고로 아스팔트 위에서 죽은 것이다. 그 당시에는 도시에서 조금 떨어져도 아스팔트가 아직 깔려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시내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봐야 했다.

교통사고를 낸 자동차를 알아보기 위해 가장 먼저 조사한 것은 왼쪽 정강이뼈 골절 위치였다. 발 뒤꿈치부터 골절 위치까지의 높이가 자동차 범퍼 높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45센티미터, 소형 승용차에 의한 교통사고였다.

지금까지 알게 된 것을 수사관에게 통보했다. 그로부터 2주 정도 지난 뒤 사고 차량을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통금 시간에 쫓겨 총알처럼 달리는데 갑자기 술에 취한 사람이 뛰어들게 됐다는 게 운전기사의 설명이다. 급정거를 했다가 심하게 다쳐 차에서 내려 그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으나 가던 중 죽었다고 한다.

운전자는 자신의 과실로 사람을 죽인 것으로 오해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 길을 계속 달리다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 속에 시체를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시체만 보고 그게 교통사고였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고 한다.

살해된 시신에는 살해된 곳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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