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섭 박사, 우주 망원경을 만드는 천문학자 [한국천문학자열전] 천문연의

*2018년 주간조선에 실린 글입니다.

한국천문연구원 정은섭 책임연구원은 우주망원경을 만드는 천문학자다. 그가 천문년 안에 우주천문그룹을 이끌고 만든 우주망원경 NISS(근적외선 영상분광기)는 스페이스X에 실려 올해 10월 지구 궤도에 오를 예정이다. 나는 우주망원경은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같은 우주선진국만 만든다고 생각했다. 2018년 5월 14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만난 정 박사는 “NISS는 천문연의 세 번째 우주망원경”이라고 말했다.

천문연의 첫 번째 우주망원경은 FIMS(원자외선분광기2003년 발사), 두 번째 우주망원경은 MIRIS(다목적 적외선 영상시스템2013년 발사)다. 세 번째 망원경 NISS에는 미RIS에는 없던 분광 기능을 넣었다. 한 발짝씩 나아가는 셈이다. 첫 우주망원경이 우주관측 카메라 정도였다면 지금은 우주망원경에 근접했다. 정 박사는 “우주 선진국에 비하면 뒤졌지만 이 정도 역량을 축적하면 언젠가 대형 우주망원경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상에서 대형 망원경을 만들어 관측하면 되지 왜 우주에 망원경을 올리는 것일까. 예를 들어 천문연은 2020년대 중반 완공되는 주경 25m급 초대형 망원경 ‘거대 마젤란 망원경’을 외국 대학 및 과학기관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천체는 여러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천체를 관측해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펙트럼은 지상에서는 잘 관측되지 않는다. 지구 대기 중의 수증기 같은 물질이 방해한다. 그래서 우주에 망원경을 올려야 한다.

/이미지 위키백과. 인류가 만든 최초의 우주망원경은 1960년대 대형 풍선에 쌓아올린 형태였다. 탄탄한 위성 형태로 1983년 지구 궤도에 진입한 것은 유럽과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공동 개발한 적외선 망원경 IRAS다. IRAS는 전천(all-sky) 관측으로 적외선 천문학에 큰 공헌을 했다. 이후 미국은 허블우주망원경을 1990년 발사했고 허블망원경은 현재도 현역이다. 우주망원경에는 관측하려는 파장에 따라 감마선, X선, 자외선, 적외선 망원경이 있다.

천문연의 NISS/이미지 천문연 사이트.정 박사가 만든 우주망원경 NISS는 적외선 망원경이다. 적외선 망원경은 우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빨간색 쉬프트가 큰 초기 은하, 성간 물질로 둘러싸여 별이 태어나는 영역, 갈색 왜성처럼 매우 차가운 별을 관측하기에 적합하다. 적외선은 또 우주 먼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멀리까지 볼 수 있다. 야간투시경을 사용하면 밤에도 사물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적외선 우주망원경의 이런 특징 때문에 NISS는 초기 은하 생성과 은하 진화 연구에 도움을 주는 적외선 우주배경복사(Cosmic Infrared Background=CIB) 관측을 하게 된다고 정 박사는 말했다.

NISS로 초기의 은하계이지만, 별이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 박사는 간접적으로 관측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NISS는 지구 궤도를 돌면서 광시야로 넓은 하늘 영역을 촬영한다. 허블망원경이 좁고 깊게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과는 망원경의 특성이 다르다. 촬영한 그 이미지로부터, 알려진 별이나 은하와 같은 점광원을 지워 간다. 그러면 남는 게 있다 이게 아주 먼 곳에서 오는 빛이야. 이를 적외선 우주배경복사라고 한다. CIB는 초기 별 또는 은하가 만들어낸 공간 요동의 흔적이다. 특정 천체를 직접 관측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관측을 간접 관측이라고 한다.

정 박사는 공간의 흔들림이 얼마나 큰지, 즉 얼마나 큰 규모까지 은하가 분포해 있는지를 NISS를 통해 연구하려 한다. 지금까지 적외선 망원경으로 1도 이하(sub-degree) 규모로 관측해 왔으며 미르IS나 NISS에서는 1도 이상의 규모로 볼 수 있다. 분광 기능이 추가된 NISS에서 ‘한 번 이상 스케일의 공간 요동에 기여하는 은하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이번 임무의 핵심이다’ 정 박사에 따르면 이론과 관측이 충돌할 수 있다. 그는 이론은 현재 관측되는 대규모 공간 요동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1도 이상의 크기로 공간을 분광해 보았을 때 적외선 파장에 따라 공간의 요동강도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알면 이론과 관측의 차이를 줄일 수 있다. 정 박사는 서울대 천문학과 박사 1년차 때 적외선 천문학을 결심하고 일본우주과학연구소(ISAS)에 갔다. ISAS 적외선 망원경 AKARI의 개발에 한국이 참여했는데, 그 팀의 일원이었다. 정 박사는 적외선 천문학 공부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적외선 천문학이라는 도구로 초기 은하의 형성과 진화를 더듬는다.

ISAS의 AKARI./미이지 ISAS.IS AS는 도쿄의 서쪽에 있는 사가미하라에 있다. ISAS는 일본 우주과학 연구의 중심지이자 일본의 NASA라고 할 수 있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산하기관이다. 정 박사는 AKARI의 개발 과정에서 자료해석, 관측 시뮬레이션, 적외선 우주관측기기 실험설계를 배웠다. 박사과정을 포함해 박사연구원 시절까지 5년반을 ISAS에서 보냈다.

미르리스 천문연구원에 들어온 것은 2007년. 천문연의 두 번째 우주망원경인 미르리스 개발에 참여해 근적외선 광시야 영상기를 제작했다. 정 박사에 따르면 한국의 적외선 천문학이 여기까지 온 것은 일본 천문학계의 도움이 컸다. ISAS로 만난 나카가와 타카오·도쿄대 교수, 마츠모토 토시오·나고야대 교수로부터 배워, 지금도 배운다고 한다. 마쓰모토 교수는 요즘도 한 달에 한 번 천문연을 찾는다.

한국 우주망원경의 현주소는 선진국의 적외선 우주망원경과 주경의 크기를 비교해 볼 때 드러난다. 천문연이 쏘는 NISS는 15cm이고, 일본이 13년 전인 2005년에 쏘아올린 AKARI는 68cm다. 유럽항공우주국(ESA)이 운영하는 허셀은 3.5m이고 NASA가 2020년 발사하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6.5m다. 15cm 대 6.5m.

정은섭 박사의 방에서 나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는 광학실험실로 갔다. 2012년부터 NISS를 마련하고 있는 방이다. 실험실 안 테이블 위에 NISS와 꼭 닮은 모델이 놓여 있었다. 발사를 위해 보낸 비행모델 직전 단계의 인증모델이다. 투명한 비닐로 막아놓은 밀폐공간 안에 있어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크기는 속이 꽉 찬 백팩 정도였다. 광학실험실에는 전선과 공구, 드라이버 세트, 커다란 공구함, 회로 기판, 경고라고 쓰인 가스통이 가득했다. 옆방에는 우주 환경 실험을 하는 대형 장비도 있었다. 천문학자들이 우주망원경을 직접 손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기계과를 나온 연구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정 박사는 없다. 우주천문그룹 연구자들은 모두 천문학 출신이다. 이를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천문학은 복합학문이라고 설명했다. 팀원 12명은 광학 전문가, 광기계 전문가, 전자 파트 전문가, 자료 해석 전문가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SPHEREx/화상 NASA.NISS 다음 적외선 망원경 프로젝트는 SPHEREx. 전천을 탐사하게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제이미 복 교수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NASA의 최종 프로젝트 승인 대기 중이다. 그러면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딛게 된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